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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스포츠 기자단

 

오는 10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전은 10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100회라는 긴 시간을 지나온 만큼 전국체전의 역사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데요.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제 100회 전국체육대회 기념주화(사진출처 한국조폐공사)

 

 

 

 

제 1회 전조선야구대회 (서울 배재고)

 

 

1920년 전국체육대회 야구(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개회식에서 이상재(오른쪽)가 시구를 하는 모습

 

 

 

전국체전의 시작은 1920년에 개최된 ‘전조선야구대회’였습니다.

사상 최초로 열린 전국민 체육대회였는데, 대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종목은 ‘야구’ 단 하나였습니다. 서울 배재고에서 개최되었고, 이날 우승도 배재고가 차지했습니다. 전국체전 100회 기념 주화가 다이아몬드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제 1회 전국체전 개최 종목이었던 야구의 경기장 모양을 따온 것이라 합니다.

 

제 19회 ~ 25회 전조선 종합경기 대회 (경기도 경성부)



 

1938년부터 1944년까지의 전국체전은 대회가 중단되었습니다. 체전을 개최하던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태평양전쟁, 중일전쟁으로 일본 본토와 식민지 조선에 사회적, 심리적 불안이 거세 졌습니다.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1931년~1945년까지 일본은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내선일체’ 기조를 내세워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를 없애고 일본에 흡수시키려는 각종 정책이 실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창씨개명, 신사참배 요구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오늘날 ‘대한체육회’ 전신인 ‘조선체육회’도 해체가 되었습니다.

 

 

조선체육회는 1920년 창단되어 식민지 시절 산발적으로 운동경기를 개최해 일제에 대한 항쟁을 표현하고 민족 자주 정신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1938년 7월 4일,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제31회 전국체육대회 (서울특별시)

 

 

  

6.25 전쟁사진1(출처: 플리커 닷컴)

1950년 개최 예정이었던 전국체육대회는 6.25 전쟁 발발로 인해 취소가 결정되었습니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이어진 한민족 간의 전쟁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수도를 부산으로 임시 이전할 정도로 모든 행정적, 사회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51년 제 32회 전국체육대회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개최된 첫번째 전국체전입니다.

 

 

온갖 대회 개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100회를 맞이하게 된 전국체전!

역사를 알고 나니 더욱 값지게 느껴집니다.